<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란 제목 때문인지 흑백 사진들임에도 분홍색 치마가 연상됐다. 한동안 거리를 돌아다니며 핑크색만 촬영했던 나의 <Pink Pink Pink> 시리즈가 떠올랐다. 그와 나의 첫 연결고리는 이처럼 색이었다. 사진집을 펼치고 한영수의 얼굴을 보았다. 매우 젊다. 빛나고 아름다운 시절이다. 그가 촬영한 흑백 풍경도, 사람도, 한영수도,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사진으로 기억된다. 부재의 기억. 이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출발일지 모른다. 어린 시절 또한 돌아갈 수 없다. 우리 엄마는 다시 건강해질 수 없다. 엄마는 파킨슨병으로 오랫동안 투병하시다가 지금은 요양병원에 계신다. 엄마는 결혼 후 7년 만에 큰오빠, 작은 오빠, 그리고 나를 낳으셨다. 어린 시절 나의 사진을 보면 예쁜 옷만 입고 있다. 엄마의 정성이 느껴진다. 그 시절 분홍색 드레스를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그 드레스를 들고 을지로에 갔다. 과거의 을지로는 재개발로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 때문에 2000년에 을지로의 가게와 주인들을 사진에 담았었다. 2017년에 다시 그들을 찾아 같은 장소에서 촬영했다. 17년동안 가게는 약간 변했을 뿐이며 주인에겐 연륜이 더해졌다. 어떤 가게는 사라졌다. 언젠가 우리는 사진으로만 예전의 을지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영수가 사진으로 부재를 기억하듯이, 나 또한 어린 시절 드레스를 을지로 한가운데 놓고 사진으로 기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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