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은주(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나의 시선과 타자의 시선
수집, 조사, 연구로 이어지는 윤정미의 연출사진. 윤정미의 사진 제작 과정은 미술관·박물관 제도의 체계처럼 작동한다. 윤정미는 관객(타자)에게 사진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그 과정에는 미술관 제도 내에서 생산되는 콘텐츠가 발견된다.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 수집한다. 철저한 연구·조사를 바탕으로 한 수집이다. 미술관에 작품이 수집되어 보관되듯 윤정미의 작업실엔 작업을 위한 재료가 항상 쌓인다. 그 수집된 재료들은 사진 속 어딘가에서 분명히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 사실 그대로를 재현하는 사진도 아니고, 순간을 찰나에 포착하는 사진과도 거리가 있다. 윤정미는 사진의 전통적 기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취한다. 특정 시공간에 사진을 찍기 위한 장치를 했던 ‘연출사진’과 맞닿아 있다. 여기에 특정 오브제만 배치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 다큐멘터리, 로케이션, 리서치, 인터뷰, 섭외, 수집, 시공간성 연구 등 여러 겹의 제작 단계를 거친다. 작업의 내용마다 각각의 단계마다 차이는 있지만 현대 사진가가 취하는 제작방식이 거의 모두 집약되어 있다.
윤정미의 사진에는 항상 그 공간 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시선’과 ‘관계’가 설정되어 있다. 윤정미의 초기 사진 속에 등장한 ‘시선’은 내가 아닌 타자의 시선이다. 사진 작업을 위해 비록 내(작가)가 연구·조사하여 재료를 수집하지만 그곳엔 철저히 ‘나’가 배제되어 있었다. 화면 속에는 주인공이 위치하고, 그 주인공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객(타자)이 등장한다. 윤정미의 사진에는 이렇게 내(작가)가 개입되고, 배제되면서 만들어 내는 시선의 이중구조가 존재한다. 최초의 시선은 정확히 타자의 시선이었다. 1998-1999년 제작된 <동물원>은 모두 빈 공간이다. 동물원을 하나의 감시구조로 인식한 시각체계를 응시한 작품이다. 타자에 의해 인식된다는 것은 그만큼 감시의 영역으로 철저히 편집된 시선이다.
윤정미는 뉴욕의 공립도서관 「Picture Collection」에서 발견한 한국 사진을 분석하면서 타자가 인식하는 나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타자에 의해 편집된 정보와 나의 경험이 철저히 분리되었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에 대한 완벽한 불일치가 형성된 것이다. 이런 시선을 담아 제작한 작품이 <Korea at the NYPL(2004-2006)>이다. <Korea at the NYPL>에는 윤정미의 주관적 시각의 한국은 없다. 타인에 의해 정리・규정된 사진파일만이 객관적 시선을 담보한다. 6·25전쟁과 민주화운동(5·18) 자료를 통해 기록된 한국은 전쟁과 폐허, 기아, 잔혹, 분단, 남북, 전근대적, 시위, 폭력, 군대 문제로 긴장감 가득한 공간이다. 자료의 정리, 기술, 해제에서는 해방, 근대화, 고도경제성장의 이면을 살펴볼 수 없다. 기록에 의하면 한국은 여전히 전쟁, 기아, 폭력의 공간인 셈이다. 그리고 여전히 일부에서 한국은 <Korea at the NYPL>처럼 소비되고 있는지 모른다. 이때 윤정미가 발견한 것은 따로 있다. 세월이 지나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고착화된 사고에 관한 것이다. 그는 작가의 사고와 일치하지 않는 데이터들을 낱낱이 분리시켰다. 그 분리한 자리에서부터 타자를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 윤정미는 <Korea at the NYPL> 작업 이후 작가와 타자의 완벽한 분리를 이끌고, 그 타자를 나(작가)의 일부로 여기기 시작한다. 이 작업은 윤정미의 초기작업과 분리되는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한다. 윤정미의 사진에서는 점차 ‘응시하는-자’와 ‘응시받는-자’의 시선이 동일시되어 갔다. 이 아카이브에 의한 ‘나(작가)’의 모습은 곧 ‘동양인’, ‘결혼한 여자’, ‘한국인’으로 규정되며, 분류의 틀은 곧 객관적 데이터를 형성했다. 이때 제작한 작품이 바로 <Super Woman(2004-2005)>이다. <Super Woman>은 윤정미 자신을 대상으로 삼았지만 그곳엔 ‘엄마’라는 전 세계 공통의 주제가 있었다. 그렇게 윤정미는 사회의 관습적 규범 속에서 작동하는 배열들을 찾아냈다. 어쩌면 그 틀은 따로 학습하지 않았어도 우리의 의식·무의식에 내재하는 체계들이다. 나(작가)와 타자를 끊임없이 동일시하고 분리하기를 반복하면서 <핑크&블루 프로젝트>가 나왔다. 불과 1년 후였다.

모든 이미지들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편집되어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 진실인가? 왜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이미지들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정리되고 분류되어 우리에게 보이는가? (윤정미)

윤정미의 초기 사진작업인 <동물원(1998-1999)>과 <공간-사람-공간(1999-2002)>은 철저히 타자의 시선만 존재했다. 샬럿 코튼(Charlotte Cotton)은 『현대예술로서의 사진』에서 이러한 종류의 사진을 ‘무표정(Deadpan)한 사진’으로 분류한 바 있다. 그는 이런 성향은 통상 풍경 사진과 건축 사진에서 드러난다고 보았다. “무표정의 미학은 주관성에서 벗어나 사진작가의 정서가 분명히 제시되어 있지 않고, 인간이 만든 세계와 자연계를 지배하는 힘의 범위를 규정하는 방식이 강조된다”고 보았다. <Korea at the NYPL> 이후 작가의 시선은 어느새 화면 속 대상들과 동시에 만난다. 이 시기 윤정미의 작업 중심엔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관한 문제가 짙게 깔려 있다. 일종의 미술관 제도 속에서 생산되는 콘텐츠와 유사한 방식을 거친다. 연구, 조사, 수집, 분류체계, 전시 등 미술관의 역할과 기능이 작업 과정에 그대로 구현되어 있다. <핑크&블루 프로젝트>가 많은 이에게 공감을 산 대목은 바로 ‘나와 타자’의 시선이 동시에 공존한다는 점이다. 종결 없는 이 프로젝트는 이미 오랜 시간 문명사회에 관습화된 문화에 문제를 제기한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무방비로 소비되고 있는 이미지 체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 작업은 주관적·객관적 시각이 중첩되어 있다. 윤정미는 뉴욕에 체류하면서 타자의 시선을 강하게 경험했다. <Korea at the NYPL>로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렇게 생산된 작업이 <핑크&블루 프로젝트>이다. 초기 <동물원>, <공간-사람-공간>과는 다른 차이가 있다. 윤정미는 2000년대 후반부터는 또 다른 시리즈에 천착했다. 즉 <핑크&블루 프로젝트>로 진척시킨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머물지 않았다. <반려동물(2008-)>을 시작으로 새로운 여정에 발을 내디뎠다. 이 작업부터 윤정미는 사람과 공간에 얽혀 있는 내러티브(서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사물을 수집할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끊임없이 접촉하고 소통하면서 사진의 조형적 구도를 잡아나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른 질문을 시작한다. “나(작가)는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관한 화두이다. 찍는 사람 혼자 모든 연출 요소를 통제할 수 없다. 그는 주변에 원래 있던 요소(사람과 사물)들과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내러티브 수집의 목적과 방향이 ‘타자의 이야기’로 점차 확장된다.

진화하는 아카이브 컬렉션: 나와 타자의 관계성
윤정미의 사진 제작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구성·연출사진에 가깝다. 결과물은 어떠한가? 일련의 시리즈로 구축된 작업을 살펴보면 작품마다 특정한 규칙을 가진 유형학적 특성도 엿보인다. 예술사진의 등장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 재현과 거리를 둔 소재들이 각광받았다. 작가의 상상과 내면의 내러티브로 구성된 사진이 점차 중요해졌다. 작가 스스로 화면 속에서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들을 구조적으로 배치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작가주의 전략이 생성된 것이다. 이런 사진 유형을 보통 ‘자립형 사진(Stand-alone Picture)’으로 이름 붙였다. 이런 사진들은 “내러티브가 하나의 이미지에 응축되어 있고, ‘포토스토리’ 혹은 ‘포토에세이’의 성격”을 띤다. 실제로 윤정미의 사진 속 인물과 그 인물에 의한 소품(사물)들에 얽힌 내러티브는 관계의 촉매제이다. 윤정미의 사진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 개인의 의식이 모여 거대한 집단의식이 생성된다. 지극히 주관적 시선들이 무의식적으로 쌓여 객관화된 사회문제로 전환된다.
<동물원> 연작을 통해 공간 구조가 갖는 통제 시스템을 연구했다면, 그 이후 사람이 생활하면서 만들어가는 공간에 집중했다. 사람에 의해 꾸며진 공간이다. 사진 속 주인공들이 없었다면 이 공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지금까지 윤정미의 작업에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다. 윤정미에게 그들은 촬영을 위한 단순한 모델이 아니다. 작가와 동일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군집시키고, 그 고민들을 아카이빙 하듯 기록해 낸다. 마치 인류학 인명사전(Human Dictionary)처럼 끊임없이 사람들을 발굴한다. 고정된 사물을 찍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사람들 저마다 모두 복잡한 사연(내러티브)이 있다. 세월이 흘러 윤정미는 같은 시공간을 재탐색하여 또다시 기록한다. 같은 공간을 10년 만에 다시 찾았다. 시간의 추이만큼 사람과 공간 역시 변해있다. 당연한 결과였다. 상점의 원주인이 후손에게 대를 물려주기도 했고, 젊은 여성 주인이 할머니가 되어 있기도 하다. 이 아카이브는 끊임없이 확장된다. 윤정미의 작업 연작은 <핑크&블루 프로젝트(2005-)>, <반려동물(2008, 2014-2015)>, <공간-사람-공간(1992-2002, 2017)>에서 드러나듯 종결 없이 생산되는 아카이브이다. 2008년 <반려동물>이 시작될 때 소설 속 내러티브를 작업에 적극 개입시킨 <It Will Be a Better Day_근대소설(2008-)>을 구상했다. 이 시리즈 역시 현재까지 진화하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주제를 달리하면서 전환된 작가의 시선을 고려한다면, 같은 시리즈 작업이지만 제작한 시기마다 모두 다른 의미를 발현시킨다.
윤정미의 <핑크&블루 프로젝트>, <반려동물>, <반려식물>, <공간-사람-공간> 등은 나(작가)와는 다르지만 동시대를 같이 경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했다. <It Will Be a Better Day_근대소설> 시리즈는 가상의 인물을 주체화해야 했다. 윤정미는 소설의 시대성으로 사진공간을 완성했다. 이 작업은 내러티브가 이미 정해져 있다. 작가는 짜인 대본을 가지고 마치 연극 연출가처럼 그 역할에 맞는 장소와 배우를 탐색했다. 실제 현장은 연극, 영화 현장을 방불케 한다. 방대한 소설 속 이야기에서 윤정미는 ‘한 장의 사진’을 제작해야 한다. 2023년 제작한 인천 <근현대소설> 시리즈는 1900-2000년대까지 100년 이상의 시대성을 조망한다. 일제강점기, 해방, 냉전체제, 근대화, 민주화, 산업화, 다문화 등 각 시대마다 주인공들이 겪는 경험은 우리가 공감하는 한국사회의 단면들이다. 15편의 소설을 모두 탐독하고 한 장면을 추려내는 것도 쉽지 않다. 윤정미는 이 사진을 찍기 위해 로케이션, 리서치, 인터뷰, 배우 섭외, 소품 수집 등의 과정을 거쳤다. 카메라를 들고 특정 공간을 관찰하면서 찍는 사진과는 다르다. 소설 속 한 장면을 단순히 기록한 것 같지만 윤정미가 구성한 과정과 가상의 소설 속 배경이 현실화되는 사이 미묘한 긴장감이 생성된다. 사진 속에 등장한 사람의 의상, 가구의 배치, 철 지난 소품, 분장적 요소는 오히려 사진으로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작가는 왜 이 장면을 선택했는가?’ 소설을 배경으로 한 이 사진을 읽기 위해서는 관객 역시 소설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우리에게 주어진 사진 한 장은 때론 소설 속 내러티브와 상관없이 해석될 수도 있다. 관객은 한 장의 응축된 사진 이미지로도 작가가 제시한 시공간성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윤정미는 이번에도 종결 없는 아카이브 컬렉션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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