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태현
1. 일반적으로 풍경화/풍경사진(landscape)는 자연을 캔버스나 인화지 표면 위에 재현해 놓은 것을 말한다. 미술에 있어 풍경이라는 독립적인 장르는 근대와 함께 시작됐는데, 이는 자연에 대한 인간이 소유 욕망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중세시기 봉건 영주나 귀족 계급 초상화의 배경으로 존재하던 자연 풍경은 당시 지배계급의 자산 증명 문서와도 같은 효력을 발휘하였다. 결국 이것은 땅/자연에 대한 인간의 직접적인 소유를 표상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림에는 땅/자연의 주인(영주나 귀족)이 전면에 배치되어 배경/풍경과 병치되는 위계질서를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 반면 근대 시기 이후 등장한 풍경화는 자연 그 자체로 독자적인 의미작용을 전개하는 전경/풍경의 장르이다. 근대적 풍경화에는 당시 정치적, 경제적 헤게모니를 장악해 가던 브르조아 계급의 자연에 대한 소유 욕망이 스며들어 있는데, 이러한 욕망은 땅/자연을 직접적인 형태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형태와 공공적인 형태로 지배하는 그들의 소유체계와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현재 유통되고 있는 다양한 이름의 풍경 사진에도 이와 같은 자연에 대한 역사적 의미가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풍경에 대한 역사적 배경은 자연 자체를 재현한 풍경 사진만으로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모든 이데올로기가 그렇듯이, 역사가 사라진 곳에는 허위의식만이 남게된다.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이미지로 침잠 되게 하는 대부분의 풍경 사진이 재생산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이것은 예술사진 제도의 담론 부재 현상 때문이다. 담론(풍경에 대한 담론)의 역사적 구성 과정은 생략 된 채 자연에 대한 아우라만 풍경 이미지를 채우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다.
2. 이번 전시는 풍경사진이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 자연(과 그것의 기표)을 담론으로 다루고자 한다. 이것은 대상으로서의 자연과 표상으로서의 풍경 사이를 가로지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대상으로서의 자연과 그 자연을 이미지로 표상하고 있는 풍경사진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자연이라는 개념이 문명(혹은 인공) 개념의 이항대립점에 위치하면서 의미를 띠기 때문이다. 즉 문명과의 비교 아래 생성된 차이의 의미가 자연을 신비적이거나 환상적인 개념의 형태로 표상하며 이것이 사진으로 재현된 것이 풍경사진인 것이다.
사실 인간은 자연을 개발의 대상에서부터 신비화의 대상까지 폭 넒은 영역에서 다루고 있다. 이것은 그림이나 사진과 같은 이미지 매체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적 영역의 갖가지 매체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데, 이러한 대상으로서의 자연 표상은 개발과 신비화의 양쪽 극한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유독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풍경사진 중 일부를 스스로 "한국적 풍경"이라는 단어로 규정지으려는 강박관념 속에서 극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한국적 풍경이라는 수사가 붙어 있는 사진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여러 가지 기술적 장치들을 이용해 아우라만 깊숙이 집어넣은 신비적이거나 환상적 이미지들뿐이다.
3. 이 전시는 이처럼 인간은 그림이나 사진뿐만 아니라 보다 폭 넓은 영역에서 자연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 기대어 풍경을 다시 읽어보려 한다. 그래서 전시 참여작가의 작업 시리즈에서 소재로 보여주고 있는 여성의 의복(방병상), 화원의 조화(전은선), 여관의 이불, 액자, 벽지, 싸구려 장판(이은종), 노래방의 벽면 그림(권은주), 자연사 박물관의 표본실(윤정미)의 자연 이미지가 사진을 통해 어떻게 표상되고 있는가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이들의 사진에서 드러나고 있는 대상들은 일상의 공간 안에서 기능에 따라 구별되고 있지만, 그 물건의 표면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이미지는 자연의 기표들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물건의 표면에 놓여있는 자연적 기표들은 그 물건의 기능적인 면과 결합하여 일련의 의미들을 파생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자연에 대한 풍경사진의 표상방식과 다른 물건들의 표상 방식이 한 지점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각 물건들이 자연의 이미지를 표상하는 매체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체의 의미가 역사를 통해 달리 구성되면서 전자는 감상의 영역에서 후자는 실용의 영역에서 각각의 의미 체계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인식은 둘로 갈라져서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표상체계와 함께 이번 전시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매체로서의 물건을 통해 드러나는 자연의 기표들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또 한번 표상 되었을 때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풍경 사진과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가다.
4. 풍경사진이 일정한 표상 시스템에 따라 자연을 이미지로 재현한 것이라고 했을 때, 각 물건/매체를 통해 표상한 자연을 다시 한번 재현한 사진은 자연을 이중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사실 자연을 재현한 자연적 기표의 의미는 우리가 어떠한 대상을 자연이라고 규정짓는 일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또한 사람들이 그것을 자연적 기표로 인식하는 행위는 이미 그것이 자연이라는 개념으로 표상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표상된 자연적 기표들을 사진으로 찍는 행위는 이미 자연이라고 표상된 대상을 한번 더 재현하는 이중적 표상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다. 사진에 있어서 이중적 표상 체계는 사진의 존재론적 측면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표상된 대상/개념의 의미가 두 번째 사진적 표상 과정 속에서 어떻게 바뀌는가(강화되는가 축소되는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생성되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사진적 표상 체계를 통한 풍경 사진의 의미가 생겨나는 시작점이라는데 이 전시는 주목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전통적으로 자연을 표상하고 있는 풍경 사진의 자연적 기표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라는 의미론적 질문을 던지는 위한 것이며, 동시에 이중적 표상체계를 통해 드러나는 사진이 전통적인 풍경/자연의 개념과 만나고 갈라서는 지점의 지형도를 그려보기 위한 것이다. 이렇듯 참여작가의 사진을 풍경 사진의 의미로 다시 읽어 가는 과정은 기존의 풍경 사진 장르에 대한 반성과 확장된 개념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또 하나의 길일 것이다.
▲ 윤정미
표본실 시리즈 중 일부
표본실 시리즈는 동물원 시리즈의 후속 작업으로 자연사 박물관의 동물 표본실을 촬영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물원과 표본실 시리즈에서 윤정미는 두 공간을 문화적으로 표상된 자연 공간으로 파악하고 그 공간 안에서 시각구조와 인간의 감시체계가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련의 표본실 작업 중에서 밀림을 배경으로 서 있는 박제된 동물들의 사진을 보여 줄 것이다.